2020. 2. 11. 16:02ㆍ뉴트크레
“그럴 때 있잖아.
보고 싶음이, 그리움이.
아무리 참아내 봐도 참아지지가 않는 거지.
그 얼굴이, 그 목소리가 마치 산소라도 되는 양.
그 애의 목소리를 마시지 못해서, 두 눈에 담지 못하는 순간순간이, 마치 그리움 앞에 안일했던 내게 주어진 형벌 같고,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거야.
눈길이 향하는 모든 것에 그 애가 있어서,
눈을 감아버리면 어둠 속에서 그 애 모습이 더 선명해 지는 거지…….”
[뉴트크레] 그럴 때 있잖아
w. 이름없음
충혈된 눈을 비비자 남자의 바싹 마른 피부 가죽이 손끝에 밀려 움직였다. 발음은 한숨을 내뱉듯 길게 흐려졌다. 남자가 앉은 그의 서재 책상에는 남자가 깜박하여 잉크 병에 넣지 않은 깃펜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바람에 묻은 것인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검은 얼룩이 조금 전까지 바쁘게 깃펜을 놀리던 남자의 새끼손가락에 번져있었다. 그는 결코 조심성이 부족하거나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근래 거의 자지 못하지 않으셨습니까?”
단호한 목소리를 향해 남자는 푹 꺼져, 반쯤 감긴 눈을 돌렸다. 의자에 앉은 채 책상 옆을 내려다 보자 버터와 결이 부드러운 둥근 빵, 그리고 홍차를 가져온 집 요정이 커다란 눈으로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
푸른 문양이 새겨진 접시들을 책상 위에 올리고 그는 곧이어 능숙한 손길로 홍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필은 마무리하셨나요? 오늘은 좀 주무셔야죠.”
“……아아.”
남자는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다가 반 박자 느리게 반응했다.
“서부에서 새로 발견한 신비한 동물 네 종류에 대한 관찰일지 정리는 모두 끝냈어. 그러니까…..”
“그럼, 간단하게 요기 하시고 잠자리로 드시죠. 내일은 월요일이니 휴식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잖습니까?”
“아니, 아니야. 있지 들어봐……
크레덴스가 보고 싶어.”
남자는 김이 피어 오르는 홍차 안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라도 보이는 양, 멍하게 바라보며 찻잔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편지를 쓰고 주무시러 가시죠.
제가 가장 빠른 길로 전보를 보내겠습니다.”
“음, 그런데… 나는,
나는 목소리가 듣고 싶어.” 남자는 묘하게 찡그리며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 전화를 걸어도 자고 있을 겁니다.”
“하….”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자, 뜨거운 차가 담긴 찻잔에 데워진 손바닥이 후끈후끈했다. 뼈가 만져질 정도로, 푹 꺼진 눈구멍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책상 위에 놓인 스탠드의 빛이 가려진손가락에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 심해 같은 어둠을 크레덴스라는 얼굴로 헤집으며 남자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그렇지, 지금은 자고 있을 거야. 세상 모르게 자고 있겠지.”
“안됩니다.”
“세인트 클로델 병원.”
“도련님.” 차 주전자를 손에든 집 요정은 고개를 내저었다
세인트 클로델 병원. 그 곳은 베어본가라는 곳 대신에 이제 크레덴스가 소속된 집단 이름이었다.
간호일을 보조하고, 빽빽한 숙직실의 침대 하나를 내어 받은 곳. 자립을 결심한 그 애가 십대를 기억할 어느 유품도 가지지 않고 빈 손으로 들어간 직장이었다.
자주 기침을 하곤 했던 그 애는 그 곳 에서 적응은 잘 했을까?
자주 울던 그 애는 매일 같이 들려오는 울음에 어쩌고 있을까?
두 눈을 세게 비벼봐도 짙은 고동색 눈동자를 가진 검은 소년이 마지막으로 꾸벅 인사하던 때가 지워 지지 않았다. 그때도 마치 한 몸처럼 떨어지지 않는 기침을 콜록콜록-, 하고 있었는데….
“나 안 졸려….”
“쉬셔야 합니다.”
책상 끝에 아슬하게 걸려있던 깃펜이 툭,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남자는 그 깃펜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봐야 할 것 같아.”
지금.
의자에서 파란 가디건을 집어 든 남자는 어두운 방안을 가로질러 발걸음을 옮겼다.
보고싶다.
보고싶다는 말을 다른 말로 돌려서 표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보고싶다는 말은 이미 남자가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의 전부였다.
보고싶었다.
동틀 녘에 소리 없이 거품처럼 사라져 버릴지라도,
사느냐 죽느냐 그 것을 선택해야 할 지라도,
그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극단적인 비유를 할지라도,
그 색색거리는 숨소리 한 자락이 남자가 숨쉴 수 있는 유일한 호흡처럼 느껴지는 밤이었다.
바람결에, 복도 밖 창문의 가지들이 세차게 흔들렸다.
나뭇잎이 창문을 긁는 소리가 고요한 복도에 울리고 있었다.
“후우….”
남자는 심호흡을 삼켰다.
오래된 병원의 나무 복도는 조용한 밤에 걷기에는 안성맞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크레덴스가 있는 방의 문을 여는 행위 또한, 이틀 밤을 샌 남자에게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 쉬고 손 끝으로 뻑뻑한 나무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잡은 손에 핏줄이 붉어질 만큼 섬세하게 힘이 드는 일이었다.
“하..”
조악한 침대가 여덟개 남짓 놓인 깜깜한 작은 방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숨을 돌리며 남자는 ‘루모스’를 작게 속삭였다.
“…..크레덴스?”
복도 가까운 곳에서부터 찬찬히 살폈지만, 잔뜩 웅크린채 새우잠을 자는 버릇이 있던 짧은 머리의 소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달빛이 비추는 창가 앞 침대가 하나 비어 있을 뿐이었다.
“…..”
먼지가 폴폴 날리는 얇은 침대시트를 매만지던 남자는, 침대 헤드에 걸린 작은 목걸이를 발견하였다.
죽음의 성물.
남자는 달빛에 반짝이는 금속 목걸이를 곧바로 낚아챘다. 뾰족한 삼각형의 금속이 손가락을 아프게 찔러왔다.
‘녹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남자는 삼각 모서리의 날카로움을 매만졌다.
“…하아.”
속을 긁어내듯 한숨을 쉬고, 남자는 목걸이를 침대의 철제 헤드에 다시 걸어 놓았다.
이렇게 깊은 새벽, 크레덴스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솜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얇은 소년의 이불을 솜으로 쥐었다 피고는,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더듬더듬 침대 헤드를 매만지며 복도로 향했다.
이미 왔던 길에 익숙해 졌는지 루모스의 불빛 없이도 사물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였다.
‘잘 잤어?’
이 별 것 아닌 안부를 매일 묻는 사람이 나였으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병원 로비에서 새벽 여섯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끝이 처지던 짙은 눈썹,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자꾸만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던 짙은 눈동자,
나에게 보여주기 싫어했지만 기다란 손가락이 특징이었던 손바닥,
습관처럼 피가 나도록 뜯어서 소독약을 묻힌 솜을 들고 마음 아파했던 입술.
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색하게, 크레덴스의 목소리는 기억에서 흐려졌다.
뉴트.
뉴트.
저기요. 뉴트.
…나를 자주 불렀었는데…
'흐... 저, 살아도 돼요?'
어떻게 그토록 흐느끼는 목소리만 선명하게 남아 있을 수 있을 까?
남자는 두 눈을 감았다.
복도를 울리는 여섯번의 종소리 여운의 귓가를 멤돌았다.
“뉴트?”
“…”
“뉴트예요?”
복도 창문 밖에 흔들리는 나무 탓에,
옅은 그림자들이 그물 같은 모양새로 복도 바닥에 몰려 다니고 있었다.
“…”
창문을 쓸어가는 나뭇잎에서는 파도 같은 소리가 났다.
“크레덴스?”
“뉴트.”
남자와 같은 줄무늬 잠옷의 단추를, 잘못 꿴 채로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는 까만 머리의 실루엣.
그가 든 검붉은 철제 랜턴에서 흘러나온 빛이 복도를 노란 빛으로 밝게 비추고있었다.
“…크레덴스, 어디 갔었어.” 비척거리며 걸음을 뗀 남자는, 눈 앞의 실루엣을 확인하듯 손끝으로 뺨을 더듬었다.
“뉴트...?”
“보고 싶었어.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저어, 그…… 어떻게 알았어요?”
“…? 무엇을..?”
“어, 저, 바쁘신 건 알지만 언제 시간 되시는지………
저, 전보 넣고 왔는데…. 알고 오셨나 싶어서…”
“…….”
남자는 입 꼬리를 말며 웃었다.
대체, 둘 다 밤새 뭘 한 건지, 눈이 쏙 들어가 어두침침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어, 저, 그 전보에 뉴트를 닮은 진저 쿠키도 넣었거든요.
크리스가 도와주긴 했는데…… 제가 거의 다 만들었어요! 정말이에요!”
“…그랬어?”
남자는 두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남자와 소년이 서 있는 곳이, 아까까지 스산했던 그 복도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아직 뜨지도 않은 해가 어딘가에 숨은 척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보드랍고 말랑한 소년의 뺨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남자는 사실 지금, 왜, 입가에 걸린 웃음을 억눌러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찾는데 실패했다. 여섯 번 울리는 시계 종 소리가 모두 끝난 다음에도 남자는 여전히 웃었다. 소년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남자가 이상해 보이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침 먹으러 갈래?”
소년의 짧은 앞머리에 내디디려는 손을 꾹꾹, 참으며, 남자는 부드럽게 말했다.
“…네.”
남자는 쭈뼛거리는 소년의 손을 붙잡아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쓸만한 먹을 것을 취급하는 가게는, 아마 일곱 시나 되어서야 문을 열 거라는 것을 두 사람 다 알 테지만, 잡은 두 손이 따뜻하기에 아무 말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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